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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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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4-04 10:21   조회: 2,902회

본문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 보고 믿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신앙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부활을 믿기가 쉽지는 않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해 하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을 찾았더니 무덤이 비어 있었다.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도 달려가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모두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당황했을 뿐, 그 순간에 주님의 부활을 믿지는 않았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육신이 없어진 사실, 곧 '빈 무덤'을 체험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은 부활의 증거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요청한다. 그 믿음은 관계에서 싹튼다. 처음에 빈 무덤에 놀란 제자들은 살아생전 예수님이 베푼 사랑과 우정을 회상하며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자 점차 빈 무덤 앞의 황당함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변화된다. 이처럼 부활 신앙은 점진적으로 자라난다.

오늘 복음에서 빈 무덤과 관련하여 "보다"라는 동사가 세 번 나오는데, 우리 말로는 모두 동일하게 번역되지만 본문에서는 세 단어가 각기 다르다. 첫째로, 20장 5절에서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으나"라는 구절에서 사용한 동사는 "blépei"로 '얼핏 보고 뜻을 이해한다'라는 의미다. 둘째로, 6절에서 "베드로는 수의가 흩어진 것을 보았는데"라는 구절에서 사용한 동사는 "theōrêi"로 '보고 의문을 갖고 이해하기 위해 힘쓰는 태도'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8절에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라는 구절의 "êiden"은 '어떤 사실을 보고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넘어 그 속에 감춰진 실재를 깨닫는 단계'를 뜻한다. (A. M. Canopi)

부활을 설명하며 쓰인 단어인 "보는 행위"는 이처럼 점진적인 과정을 거친다. 부활의 신비를 처음에는 얼핏 보고, 그다음은 의문을 갖고 알기 위해 노력하다가, 최종적으로 눈앞의 현상을 넘어선 깊은 뜻을 보게 된다. 이렇듯 부활 신앙은 고정적 사실 확인이 아니라, 작은 시작에서 비롯하여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성숙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성숙의 관건은 예수님과의 관계다. 즉 부활 체험은 얼마큼 그분과 가까운가 하는 기준에 따라 깊어지고 충만해지는 여정이다.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라는 구절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이 표현 다음에 "사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구절이 이어진다. 제자들이 보고 믿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아니라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제자들은 "빈 무덤을 보고 그제야 예수께서 살아서 하신 부활하리라는 말씀의 진정성과 정당성을 믿게 되었다."(H.U. von Balthasar) 예수님께 대한 신앙은 객관적 사실을 증명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가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때 생겨난다. 황당한 빈 무덤을 보며 예수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담긴 약속을 믿게 된 것이 부활 신앙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죽은 이후의 삶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향한 하느님의 헌신은 절대적이고 영원하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인 예수께서 우리와 맺으신 약속 역시 절대적이다."(로완 윌리엄스) 믿음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빈 무덤같이 공허한 세상이다. 여전히 빌라도와 바리사이들처럼 힘센 이들이 득세하고, 군중처럼 부화뇌동하며 고발하는 이들이 넘치는 가운데, 제자들처럼 비겁하게 주님을 외면하는 우리들이다. 이 상황에서 빈 무덤은 실패와 절망의 흔적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믿으라는, 부활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초대다. 빈 무덤 같은 우리의 현실을 보며 믿음의 용기를 청하자.

마더 테레사가 자신의 방에 이런 경구를 붙여 두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십시오.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도 상실하십시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일은 잊힐 것입니다. 그래도 선을 행하십시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도와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오."

이 글을 예수님 부활에 비춰 이렇게 읽어본다.

세상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어둠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십시오. 남을 위한 삶이 헛일이 아님을 예수님의 부활이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도 성실하십시오. 끝까지 성실한 예수님의 희생은 부활로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일은 잊힐 것입니다. 그래도 선을 행하십시오. 세상은 우리를 잊어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잊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그토록 정직하셔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도와주십시오. 모든 것을 바쳐 인간을 도우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오.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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