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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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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8-12 09:41   조회: 2,375회

본문


연중 제19주간 목 -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이라는 표현에 드러나듯

말씀의 맥락은 사회적 사건이나 남의 일에 관한 용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직접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의 용서에 관련된 질문이다.

예수님 당시 여러 종교운동들은 용서에 관해 상이한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는 그룹, 세 번까지 용서하라는 그룹, 최고치 일곱 번 등등..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말씀의 의미는 무제한 용서하라는 뜻인데, 가능한 일일까?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용서의 라틴말(perdonar)은 per(~ 을 위해서) + donar(내어주다)로 구성되었다(영어 for + give = forgive).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줌이 용서이고, 그 내어줌을 받아들임이 용서받음이라는 의미가 어원에 담겨있다.

온전히 내어주고 그를 온전히 받아들여 완성되는 용서는 이렇듯 하느님 사랑의 나타남이다.

용서할 근거는 내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너그러움에 있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내게 잘못한 이로부터 하느님 아버지께 눈을 돌리고

내 원한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용서로 마음을 돌릴 때,

이전의 복수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 하느님 나라가 열린다.

용서하기 힘들었던 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빼앗겼던 자기 통제권을 되찾아 나의 존엄성이 회복된다.

내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의 적이고

내 원수를 향한 막장 드라마 복수극은 마음속에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

"용서하기 위해 인간은 '적과 상대한다'라는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생명을 지닌 존재는 누구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내게 손해를 끼치거나 기치 있는 것을 내게서 빼앗는 타자는 나의 적이다.

그에 대해서 불신, 두려움, 혐오의 깊은 감정이 생기고, 나는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한다.

상대에게 위험을 느끼고 불신하며 항상 공격의 태세를 갖춤으로써 나는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이러한 적대감은 짐승 안에도 있다.

이 상황에서 진정한 용서는 본능적 증오의 방어태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본래적인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는

적에 의해 손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호받지 않은 상태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참으로 용서하는 자가 두려워하는 자와 증오하는 자 보다 강하다."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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