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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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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8-29 10:36   조회: 2,284회

본문


연중 제22주일 나해 -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모든 종교는 지켜야 할 계명을 제시하는데, 이 계명이 개인이나 공동체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준수하지 못해 죄의식만 키우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제1독서(신명기)는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을 전해준다. 그 끝에 계명을 지킬 이유를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 있느냐?"라고 밝힌다. 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는 계명을 주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함이고, 그 하느님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분이셨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이나 율법은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찾고 그 사랑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편이었다. 그런데 차차 주객이 전도되어 방편이 목적 행세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복음에서는 이 문제가 제기된다. 식사 전에 손 씻는 계명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스라엘 지역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곳이기에 위생상 자주 씻어야 했고, 특히 식사 전에는 손과 그릇을 씻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 귀해서 이를 보존하기 위해 손이나 그릇을 씻는 계명을 지켜왔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라고 비난한다. 사람의 생명이 귀해서 손을 씻는 법이 있었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손을 안 씻었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규나 계명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우리를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지키는 “울타리”였다. 그런데 울타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지키지 않고, 울타리 자체를 더 중시하는 모습이다. 계명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거기 담긴 내용은 보지 못하고 글자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은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뿐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곳에 있어왔다. 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계명의 뜻은 잊은 채 문자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육체적 차원에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문제다. 예수님은 율법 규정을 육적, 문자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풀어 주신다. 율법의 근본 의미는 자신의 내부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식별하는 데 있다는 말씀이다. 식별은 모든 종교 수행의 근간이다. 불가의 화두를 통한 깨달음, 유가의 성찰을 통한 인간성 회복 등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행동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어서 의식을 성찰하고 식별하는 것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스도교의 식별 기준은 간결하다. 생각이나 충동이 어디서 왔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웰빙 시대, 인간은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며 몸에 좋은 음식 찾는다. 좋은 음식은 재료가 좋아야 하고, 좋은 재료를 구하려면 원산지가 중요하다. 재료가 외국산인지 국산인지, 유기농인지 저농약인지,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는지 유해 물질은 없는지 잘 보고 선택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식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감정이나 충동이 생길 때 즉흥적으로 그를 따를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서서 그 느낌이나 충동이 원산지가 어딘지, 즉 어디서 온 것인지 살펴봄이 식별의 출발점이다. 감정이나 충동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인지, 개인의 경험이나 관습 때문에 생겨났는지, 혹은 악한 본성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봄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한 식별 기준이 된다. 

그런데 감정이나 충동이 하늘에서 왔는지 악한 본성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라고 일러주신다. 여기서 길게 열거된 목록은 악에서 나온 것이므로, 거기 휩쓸려 그대로 따라갈 경우 욕망과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절망과 비극에 빠져 삶을 팽개치고 자신과 타인을 망가뜨리게 된다. 

이와 달리 감정이나 충동의 원인이 하늘에서 오는 것도 있다. 이에 관해 야고보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이르신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감정이나 충동이 우리를 사랑과 평화와 감사, 기쁨과 희망 속에 거룩한 쪽으로 이끌면 "위에서", 곧 하늘에서 오는 은사이니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후회하는 행동들을 살펴보면 대개 감정이나 충동을 식별 없이 따를 때이다. 한 발짝만 물러나서 그 원산지가 어딘지 살펴보고,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는 식별을 통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감정이나 충동을 행동에 옮기기 전 먼저 살펴보아 나쁜 쪽으로 사람을 이끌면 악에서 나왔으니 즉시 멀리하고, 사람을 기쁨과 행복, 온유함과 관대함, 자비와 사랑으로 이끌면 이는 위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감사하며 기쁘게 실행하는 것이 식별의 원칙이다(성 이냐시오 로욜라).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식별과 선택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좋은 등산복을 잘 식별하여 사서 걸어둔다고 몸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웰빙을 위해 질 좋은 유기농 야채를 잘 식별하여 구한 다음,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 식별도 마찬가지다. 느낌이나 충동이나 사건의 뿌리를 살펴 악한 본성에서 왔으면 즉각 내버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자 은사는 즉시 받아들여 실행할 때 우리의 영적 생명력이 놀랍게 자라난다. 야고보 사도는 그러기에 이렇게 당부하신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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