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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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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9-05 09:37   조회: 2,279회

본문


연중 제23주일 나해 - 에파타 !

 



세상 사람들은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수시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낸다. 더 많은 이들에게 내말 들어달라는 호소로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시위도 하고 청원도 한다. 모두 소통을 위한 몸부림이다. 소통의 기본은 듣고 말하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님이 듣지 못하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사건을 전한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의 길을 일러주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예수님이 고쳐주신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누구일까? 귀먹은 상황부터 살펴보자. 귀가 먹으면 옆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그 결과 타인과 멀어져 혼자 지내게 된다. 이웃을 사귀기 어렵기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기쁨도, 아픔을 나누는 위로도, 살아갈 용기를 주는 칭찬도 듣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되어 마음속에 분노가 쌓인다. 

귀가 먹었을 때는 외부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말더듬이는 자기 자신을 외부에 표현하지 못한다. 마음속에는 할 말이 있는데 말이 목구멍을 넘어서지 못하는 갑갑한 상황이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항변할 수 없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도 표현할 수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 마음을 전할 길이 없을 때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복음에 등장한 사람은 “귀먹고 말 더듬는” 복합 장애인이다. 외부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내부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이 장애를 주님께서는 어떻게 고치셨을까? 

예수님은 먼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가신다. 듣지 못하고 말 못 하여 괴롭고 갑갑한 사람을 군중에게서 떼어내어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신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었다. 옆 사람과의 불통이 괴롭고 진정한 소통을 바란다면 먼저 세상 일에서 떨어져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은 내 현실을 아시는 주님 앞에 머물러야 한다. 

그다음, 예수님은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 넣으신다. 유별난 행동인데 그 이면에는 막힌 곳을 만지며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손가락을 통해 당신의 사랑이 귀속에 들어가길 바라는 애틋한 몸짓이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비위생적 행동처럼 보이지만, 침은 고대 세계에서 치료제였고 성경에서는 모성적 접촉을 의미한다. 약품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미는 새끼의 상처에 침을 발라 고쳐주었고, 더러운 것이 묻으면 침으로 닦아주었다. 어미의 침과 같은 따뜻함에서 아이가 보호받아 병이 낫기에 엄마 손이 약손이라고 했다.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예수님의 유별난 행동은 어미 품과 같이 편안하고 보호받는 상황을 만드셨음을 상징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다. 말을 듣지도 못하고 전하지도 못해 한숨만 쉬는 인간을 당신 마음에 품으시고, 당신의 아버지께서 계신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께서는 그 한숨 가운데 귀먹은 반벙어리와 하나가 되신다. 이제 귀먹은 반벙어리는 예수님 밖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안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간과 하나가 되어 하늘을 향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를 기도하신다. 내가 힘들어 한숨 나올 때 주님도 한숨을 쉬신다. 주님의 한숨은 그렇게 우리와 하나가 되시는 몸짓이었다.

그리고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라고 복음은 전한다. “에파타 - 열려라”라는 아람어는 신체기관(귀나 혀)에 쓰는 말이 아니라, 사람(병자)에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한다.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신 일은 단순히 귀와 혀 등 신체기관의 치유를 넘어서서 한 인간이 하느님께 열리는 인격적 치유였음을 암시한다. 귀먹은 반벙어리를 듣고 말하도록 고쳐주신 뜻은 단순한 언어 기능 회복을 넘어서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열리라는 초대다. 열린 귀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풀린 혀로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초대를 행간에서 읽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자. 목소리 높여 말을 하건만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세상, 할 말 못 해 가슴속에 분노가 가득 찬 반벙어리 세상 아닌가? 부모의 말이 자식에게 통하지 않고, 아내의 말이 남편에게 외국어처럼 들리고, 힘센 이들의 갑질 앞에서는 말도 못 한 채 억울하고 갑갑해 기가 막히는 세상 아닌가?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를 따로 불러내신다. 그 부르심을 따라 여기 이 자리에 우리는 모였다. 귀가 막힌 세상, 혀를 굳게 하는 세상 일로부터 떨어져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렇게 모인 우리 마음을 주님께서 아신다.

억울함과 갑갑함을 들어 달라고 목소리 높이기 전에, 내 귀를 사랑으로 어루만지시며 내 속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이자. 주님은 상처 입은 새끼를 침으로 핥아주는 어미 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침이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건네신다.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었냐? 세상에서는 비록 귀머거리 반벙어리처럼 힘들더라도 너는 하느님의 자녀다.'라고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리고 나의 한숨에 당신의 한숨을 합치시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다.

그 주님의 자비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면 “에파타! 열려라!” 하시는 말씀이 들릴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들을 귀가 열리라는 명령이다. 세상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하다. 비난과 험담, 거짓과 허세, 위협과 우울함 등으로 가득 찬 소리를 들으라고 귀를 열어주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귀를 열어 주신다. 

“에파타! 열려라!” 하시는 선언을 또한 우리 혀를 풀어 주시는 말씀이다. 험담과 비난과 거짓을 말하라고 혀를 풀어 주신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망설이지 말고 고맙다고 말하라고, 힘들어하지 말고 도와달라 말하라고, 부끄러워 말고 미안하다고, 모든 일에 하느님 감사하다고, 당신을 찬미한다고 말하라고 우리 혀를 풀어 주신다. 

귀와 혀를 만지시던 주님의 손길이 이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체로 우리에게 오신다. 귀가 뜨여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씀을 알아듣고, 혀가 풀려 고백하자: ‘아멘. 당신은 나의 주님입니다. 내 아픔에 한숨 쉬시며 내 귀를 열어주시고 내 혀를 풀어주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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