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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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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11-08 10:32   조회: 1,962회

본문


연중 제32주일 - 과부,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

 


오늘 들은 성경 말씀에서는 공통적으로 과부가 등장한다. 첫 독서는 엘리아 예언자를 대접하는 과부, 복음은 가진 모든 것인 동전 두 닢을 헌금하는 과부 이야기이다. "과부가 일생을 혼자 살고 나면 한숨이 구만 구천 두"라는 옛말이 있다. 설움과 고생이 막심한 과부의 처지를 이르는 말이다. 성서 시대에 과부의 처지는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하였다. 과부를 의미하는 히브리 말 '알마나'는 '벙어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벙어리처럼 말도 못하며 보호자 없이 살아야 했던 과부의 처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남성 중심의 경제체제는 과부의 재산권 행사를 금지했기에, 자식이나 죽은 남편의 형제들이나 이웃의 희사에 생계를 의지하였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외롭던 상황에서 경제적으로도 곤궁하게 살던 이들이 과부였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과부들은 어려움 가운데 가진 것을 베푸는 이들이다. 첫 독서에서 사렙타의 과부는 자신도 굶어 죽을 판에 가지고 있던 모든 식량을 털어 나그네 엘리아를 대접한다. 복음에서는 큰돈을 헌금하는 부자들 틈에서 과부는 모든 생활비에 해당하는 동전을, 즉 "궁핍한 가운데 가진 것을 다" 하느님께 봉헌한다. 곤궁한 처지에서 그렇게 베푼 결과, 사렙타의 과부는 식량이 떨어지지 않는 은총을 받고, 생활비를 다 헌금한 과부는 예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는다.

어떻게 어려운 처지에서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과부들은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간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가 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는지 안다. 성경의 과부들은 자신이 의탁해야 할 분은 하느님밖에 없음을 체험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곤궁한 처지라도 주님께 의지하고 있는 이들은 세상의 무엇도 두렵지 않다. 이들은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지 않기에 하느님 뜻에 따라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나누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렙타의 과부가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 식량을 나그네에게 대접하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고 내 모두를 받아 주신다는 믿음이 없이 어떻게 헌금함에 "생활비를 모두 다" 선뜻 봉헌하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에게 깊은 친밀감을 드러내신다. 아마도 곤궁한 과부 모습에서 당신 어머니를 보셨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봉헌하는 과부는, 주님의 종으로 사시며 외아들의 희생까지 온전히 봉헌하신 당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 순간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만났을 것이다. 과부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듯, 세상의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해 외아들을 내어주신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보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과부를 보며 어쩌면 당신이 맞이할 죽음을 예감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제2독서)라는 말씀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목숨을 바쳐서 봉헌하실 당신의 희생 제사를 예감하셨을 것이다. 

시선을 돌려 과부의 마지막 식량을 받아먹은 엘리아 예언자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엘리아는 우상숭배에 빠진 패악한 왕과 왕비를 대적하러 가는 길이었다. 두려움이 가득한데, 먹을 것마저 떨어졌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때 과부가 모든 식량을 털어 만든 식사는 음식이 줄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주었을 것이다. 세상을 위한 희생 제물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려는 결의를 다지던 예수님께 과부의 온전한 봉헌 역시 말 없는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또한 사람이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자신만을 위해 모으고 쌓아 두어서는 행복하지 못하다. 내어 줄 때에만 은총이 채워진다. 나누지 못할 때 행복이 우리 안에 들어올 여지는 없다. 오늘 복음을 두고 어떤 선배 사제가 과부처럼 정성스럽게 교무금이나 헌금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풀이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을 듯하여 '과연 교무금을 많이 내고 봉헌을 많이 하면 복을 받아 부자가 될까?' 하고 질문을 하니, 오랜 사목 경험을 가진 선배 사제는 자신의 경험상 그렇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정성을 들여 봉헌한 사람은 정성을 들인 만큼 하느님 앞에 자주 나오고, 하느님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그만큼 성경 말씀대로 너그럽고 원만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고,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다 보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일이 잘 풀리게 되어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복을 받더라고 한다.

그와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워낙 인색하여 교무금이든 헌금이든 억지로 조금만 내려는 이들은 성당에서나 사회에서나 왠지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한다. 봉헌이든 인간관계든 살아가는 데 인색한 이들은 마음도 인색하게 된다. 당당하지 못한 채, 늘 쪼들리며 불평 속에 살아간다. 인색한 이들에게는 행복도 인색하게 내린다. 자기 생각만 하며 하느님에게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이들에게 은총과 평화와 축복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과부의 내어줌, 자기 증여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였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식량으로 식사를 대접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생활비 전체인 동전 두 닢을 내어놓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놓으셨다. 그분의 희생 제사가 바로 지금 재현되고 있다. 주님을 받아 모시면서 주님과 다르게 사는 것은 위선이다. 그런 상태에서 주님의 몸은 인간과 하나 되기 어렵다. 바리사이들의 위선이 아니라 과부의 온전한 봉헌의 삶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가난한 과부를 보시듯 우리를 눈여겨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을 마주하며,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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