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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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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11-15 10:01   조회: 2,100회

본문


연중 제33주일 나해 -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위령성월이자 전례력으로 한 해가 끝나가는 시기에 복음 말씀은 세상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알아듣기 힘들고 두려운 말씀이다. 성경에서 종말의 모습은 우리에게 생소한 묵시문학이라는 양식으로 기록되었다. 묵시문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절박한 기대감을 상징과 은유로 표현한다. 그러기에 그 근본에 깔린 메시지를 먼저 파악해야 이해가 수월해진다. 오늘 들은 말씀의 바탕에 담긴 메시지는 한마디로 "만사에는 끝이 있다."라는 점이다. 우주와 역사, 사회와 개인의 삶에는 끝이 있다는 선언이 묵시문학 양식으로 표현된 종말에 관한 말씀의 핵심이다. (H.U.von 발타사르)

예수님은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라고 이르신다. 활엽수인 무화과나무의 순이 돋을 때는 여름이 시작될 때다. 히브리 말로 "여름"은 동시에 '끝"을 의미한다. 무화과나무 잎을 보고 "여름이 온 것을 알라"는 말씀은 "끝이 온 것을 알라"는 의미다. 여기서의 끝은 봄의 끝이다. 그렇듯 계절뿐 아니라 삶에도 끝이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라는 말씀이다.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라는 첫 독서의 종말 예언 역시 세상에 끝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살라는 말씀이다.

끝의 시간은 언제일까?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주님께서 이르신다. 종말의 시간은 "사람의 아들"조차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이다. 만일 종말의 시간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면 굳이 늘 깨어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알 수 없기에 늘 깨어있어야 하고, 그 깨어있음이 우리를 사람답게, 신앙인답게 살도록 이끈다.

성서 전반에 걸쳐 종말은 지금의 세계와 상관없이 미래에 일어나도록 예정된 사건이 아니다. 종말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태도에 의해 좌우되는 미래다. 하루를 시작하며 끝이 있음을 알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오늘이 그날'이라고 여긴다면, 지금 여기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자기 삶의 끝을 망각하면 사랑과 평화 용서와 나눔의 기쁨을 미뤄둔 채,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거나 무능한 자신을 자책하며 하루를 보낸다. 끝을 생각하는 태도는 삶을 가치 있게 꾸려가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지혜다. 

한 남자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어서 저승으로 갔다. 그곳에서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 남자는 곰곰이 생각한 후 대답했다. "저는 남들과 똑같이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엔 신나게 뛰어놀았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남들처럼 공부했고, 청년이 되어서는 잠시의 방황이 있었습니다만 곧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는 가족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바쁘게 살았습니다.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염라대왕은 그 말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너는 이제부터 여기 저승에서 살 거라."

남자는 남들처럼 살다가 갑자기 끝난 자기의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제대로 자기답게 살아보지 못했다는 생각, 좀 더 의미 있는 있을 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염라대왕에게 간청했다.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면 진짜 저 다운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 염라대왕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 그건 절대 안 된다." 남자는 다시 애걸복걸하였다. "염라대왕님, 저는 제가 이렇게 일찍 올 줄을 몰랐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을 남겨두고 이렇게 갑자기 죽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왜 저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염라대왕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늘 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가 저무는 것도 나의 메시지였고, 너의 이마에 주름살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나의 메시지였다.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씩 늘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빠지는 것 역시 나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인간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구나. 평소에는 대충대충 살다가 막상 삶을 잃어버릴 때가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하는지..."

매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로 알고 충실히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실제 종말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신앙인에게 끝은 파멸이 아니라 세상의 죄를 사하시는 희생 제사로 완성되는 구원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기"(제2독서)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물은 우리와 하느님을 이어주는 끈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이들에게 종말은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하느님과 연결되어 하느님을 뵙게 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모르기에 그 날과 그 시간이 두려운가?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마주보라.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 주님의 사랑이 아무런 확실성 없는 세상을 순례하는 우리의 희망이다. 

세상에는 종말이 있고 우리 삶도 끝이 있다. 무화과나무 잎을 보며 봄의 끝을 알아채듯, 인생에서 끝을 생각하는 지혜가 삶을 충만하게 한다. 끝을 망각하고 시간을 흘려 보낸다면 염라대왕 앞에서 인생을 후회하는 남자처럼 될지 모른다. 끝을 염두에 둔다면 아무도 모르는 "그 날과 그 시간"을 바로 오늘 여기로 받아들인다. 오늘을 그 날로, 지금을 그 시간으로 여긴다면 용서하지 못할 원한이 어디 있고, 내려놓지 못할 집착이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지금 여기, 일상의 끝 순간에 나를 위해 자신을 예물로 봉헌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마주한다면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평화를 누릴 것이다. 복음 환호송 말씀을 다시 새기자.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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