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본문
연중 제33주간 금 -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유다인에게 성전은 시나이 산에 나타나신 하느님께서 주신 계약인 열 가지 말씀(십계명)을 보전하는
계약의 궤를 모신 건물(돌로 지은 만남의 천막)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건물이었지만,
예수님에게 성전은 고정된 건물의 개념을 넘어서서
"기도의 집"(이사 56,7), 즉 하느님을 찬미하는 곳을 의미하였다(요한 4, 21 참조).
나아가 늘 아버지께 기도하시던 당신 자신이 성전이고(요한 2, 19; 마태 26, 61),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성령의 성전(1코린 6, 19)이 된다.
그 집이 강도들의 소굴이 된 상황은 하느님을 악행에 이용하는 상황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득을 남기는 수단으로 변하면 강도들의 소굴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성령의 성전인 인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어쩌다가 인간 실존이 강도들의 소굴이 될까?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물건을 파는 일"은 이익을 남기기 위한 거래를 말한다.
인간이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본래의 창조목적을 벗어나서
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 인간은 존엄성을 잃고 강도의 소굴이 된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래 모습을 찾으라는 호소를 거북스러워하는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기에 골몰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
사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길이 말씀을 듣고 그 곁에 머무름에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말씀을 듣고 그 곁에 머무는 곳이 참으로 내가 있을 곳, 내가 할 일이라는 초대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