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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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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대축일 낮 미사 - 그리고 보고 믿었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6-04-05 10:10   조회: 9회

본문

부활 대축일 낮 미사 - 그리고 보고 믿었다.


부활을 축하드린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바탕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이를 온전히 믿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부활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대개 부활을 ‘물리적 차원’의 사건으로만 연상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시신을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무덤을 비우신 물리적, 생물학적 사건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그 자리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더라면,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는 장면을 생생하게 녹화할 수 있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부활의 현실은 우리의 이러한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치워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사도들에게 달려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라고 알린다. 그녀조차 주님의 부활을 즉시 믿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물리적·생물학적 한계 안에서 부활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다. 사흘 동안 숨이 끊어졌던 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활을 믿어야 할까? 부활은 물리적 현상을 넘어선 신앙의 진실이다. 따라서 증명해야 할 명제가 아니라, 체험해야 할 신비다. 부활의 신비는 신앙의 여정 안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자라난다. 요한복음은 부활 신앙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다른 제자의 반응에서 변화의 과정이 드러난다, 


​빈 무덤을 확인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우리말로는 모두 ‘보다’라고 번역되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서로 다른 세 단어를 사용한다. 처음에는 무덤에 먼저 도착한 제자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라는 구절에서 "보다"로 사용한 동사로 육안으로 사물을 ‘얼핏 보고 그 외형을 인지하는 단계’를 의미하는 블레페이(blepei)(20,5)를 사용한다. 둘째,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인 것을 보고 의문을 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힘쓰며 살피는 태도’를 뜻하는 테오레이(theōreī) (20,6)가 등장한다. 셋째, ‘보고 믿었다’는 구절에서는 에이덴(eīden)(20,8)이 등장한다. 이는 눈앞의 현상을 넘어 그 속에 감춰진 실재를 직관적으로 깨닫고 수용하는 ‘영적 통찰의 단계’를 의미한다. (A.M. Canopi 참조) 


빈 무덤을 ‘보는 행위’가 이토록 점진적으로 묘사된 것은, 부활 신앙이 단번에 완성되는 고정된 사건이 아니라 작은 시작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숙해가는 ‘여정’임을 일러준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고 믿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었다는 뜻일까? 복음은 이 표현 뒤에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제자들이 비로소 믿게 된 것은 바로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이다. 즉, 빈 무덤이라는 현상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의 진정성을 깨닫고 신뢰하게 되었다는 의미다(H.U. 폰 발타사르). 


​부활 신앙은 객관적 증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뢰의 신앙이다. 이 신뢰의 신앙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무덤이 빈 것을 보고 당혹해하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되새기며 그 혼란을 믿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은 물리적 사실에 매몰된 확신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말씀을 반추할 때 비로소 피어난 고귀한 응답이었다.


​주님은 왜 화려하고 압도적인 장면으로 당신의 부활을 증명하지 않으시고, 이토록 고요하고 점진적으로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실까?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께서 조용히 행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다. 하느님은 인류의 장대한 역사 속에 서서히 당신의 역사를 세우신다. 인간이 되신 그분을 동시대인들과 역사의 주도적 세력가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는 고난받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분으로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당신 제자들의 믿음을 통해서만 인류에게 오시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계속해서 조용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그분께 자신을 개방하면 그때 서서히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신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 구원을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셨지만, 아직도 전쟁으로 세계 곳곳에서 아이들을 비롯한 무고한 사람들이 폭격으로,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불평등과 차별과 병고로 신음하는 이들은 늘어만 간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 세상에서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 


​마더 테레사가 자신의 방에 이런 글을 걸어두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선한 일을 하십시오. 당신이 옳은 일을 하면 내일은 잊힐 것입니다. 그래도 옳은 일을 행하십시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도와주십시오. " 


​이 글을 부활 신앙에 비춰 이렇게 읽어본다: 


'세상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그래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어둠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선한 일을 하십시오. 남을 위한 삶이 결코 헛일이 아님을 예수님의 부활이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옳은 일을 하면 내일은 잊힐 것입니다. 그래도 옳은 일을 행하십시오. 세상은 우리를 잊어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십시오. 진리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도와주십시오. 모든 것을 바쳐 인간을 도우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다시 살아나신다. 그 신비에 동참하는 행복한 부활 시기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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