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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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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3-29 11:39   조회: 2,973회

본문


성주간 월 - 나르드 향유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독서)

야훼의 종의 첫째 노래는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그린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계산하지 않고 내어주는 행동을 낭비라고 한다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의 종, 당신 외아들,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주신 사건은

"하느님의 거룩한 낭비"(Paul Tillich)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복음)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님 발에 내어 드리는 마리아는

자신도 모른 채 인간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다.

인간의 거룩한 낭비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의 눈에 마리아의 행위는 가치 없는 낭비로 보인다.

예수님을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는 자의 눈에는

아들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도, 그 외아들의 십자가상 희생도, 마리아의 사랑도 낭비로 보인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려는 가난한 이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야망의 눈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보면, 진정 가난한 이는 예수님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정도로 가난한 분이셨다.

자기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으로 보면, 가장 큰 가난은 십자가상 죽음이다.

그분의 죽음은 무죄한 분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가난이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그 여인의 '낭비'(나르드 향유 300 데나리온어치는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는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당신 몸을 바치시는 헤아릴 수 없는 '낭비'를 예고한다.

유다가 보기에 마리아의 행동은 의미 없는 즉흥적 사건으로 보이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는 심오한 신비가 담겨있다.

예수님은 기름으로 축성되신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이)로 모든 이를 위해 죽으실 분이다.

예수님께 향유를 바른 사건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신(루카 4, 18 참조)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낸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기에 눈에 보이지만,

가난을 넘어서 그 극한인 죽음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은 앞으로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이별을 준비하며 가장 가난한 예수님께 가장 값진 것을 드리는 일을 마리아가 한다.

하느님의 내어 주심 - 예수님의 내어 주심 - 마리아의 내어 줌: 자기 증여의 사랑을 본다.

마리아의 낭비가 상징하는 예수님의 낭비, 그로써 나타난 하느님의 낭비는 결국 사랑이라는 말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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