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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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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10-24 17:30   조회: 19회

본문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전교주일인 오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복음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라고 명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 사명은 제자들뿐 아니라 제자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 모두에게 주신 선교 사명이다.

그런데 전교 혹은 선교란 무엇일까? 단순히 천주교회를 전하며 입교를 권하는 것일까? 오늘 주님 말씀에 따르면 전교는 세상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이다. 세례는 제자가 된 이후의 결과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 채 세례만 받을 수도 있다. 간디가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싫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답지 않음을 지적한 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았으나 예수님의 제자로 살지 않는다면 신앙의 기쁨을 모른 채 억지로 성당을 다니거나, 복음과는 거리가 먼 취미생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거나, 냉담자가 되고 만다.

타인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자란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서 배우고 수련하는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에 일반적으로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였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뽑으시는 가장 큰 특징은 자격요건이 없는 점이다. 즉 신분이나 능력이나 연령의 구별 없이 "당신을 따르려는 결심"하나면 충분했다. 그래서 열두 사도뿐 아니라 이른 두 사도, 더 나아가 여자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었다. 당시 사회에서 제자들은 학문이나 기술을 배웠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인 주님과 함께 살며 주님의 삶을 보고 배우며 따랐다. 즉 스승과 인격적 관계가 제자 됨의 바탕이 되었다.

인격적 관계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인생의 기준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삶의 방식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란 스승의 운명을 따르는 이들이다. 즉 스승처럼 십자가를 지고, 스승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마침내 스승과 하나가 되는 이들이 제자다(A. Feuillet).

현대인의 신앙 실천 형태를 두고 전문가들은 신앙인을 "신자와 제자" 두 부류로 구분한다. "신자"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는 하였지만, 신앙 실천을 미루는 이들이다. 날씨가 너무 좋으면 단풍놀이 가기 위해 성당에 안 나오고, 너무 추워도 코로나 핑계로 안 나온다. 피곤한 날이면 기도를 빼먹고, 조금 바빠도 신앙 실천을 접어 둔다. 이렇게 이유가 닿기만 하면 신앙생활은 뒷전으로 밀어 놓는 이들은 명색이 신자라고는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믿지 않는 이들과 다름이 없다. 입만 열면 남의 뒷담화를 일삼고 불평과 원망 속에서 허덕이며 그런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들에게 신앙은 기쁨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다.

신자와 달리 "제자"란 어떤 경우든 조건 없이 신앙을 실천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바쁘면 바쁘더라도, 힘들면 더 열심히 신앙을 실천한다. 어떤 어려움도 이런 제자들의 신앙 실천을 가로막지 못한다. 이들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였기에 그 사랑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사는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주님을 따르기에 주님 안에서 변화된 삶, 거듭나는 삶을 살아간다. 늘 감사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인생의 짐을 평안히 받아들이며 지혜롭고 기쁘게 살아간다. 그러기에 이들 곁에는 머물기만 해도 위로와 격려를 느끼며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이들이 주님의 제자로서, 순교자들과 수많은 증거자들이 그러했듯 삶 자체가 이미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신자를 만들라고 명하지 않으시고 "내 제자로 삼으라"라고 복음에서 이르신다. 전교는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는 동떨어진 채 예수를 믿으라고 광신적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전교는 제자가 아닌 신자를 양산할 뿐이다. 자신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삶과 죽음, 희생과 봉헌을 배우고 따름으로써 다른 이를 주님의 제자로 삼는 것, 즉 자신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살아감으로써, 그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다. 그러기에 교회를 전하는 '전교주일'이라는 말에 부연하여, 복음을 받아들여 살아가자는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오늘 주일을 지낸다.

언제 어디서 전교할 것인가? 오늘 주님께서는 "이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라고 이르셨다. 지금 여기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삶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제자가 되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 삶을 전하는 것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이러한 제자의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분명하게 "내가 세상 끌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하신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BBC 방송 기자가 테레사 수녀를 방문하였다. 기자는 처음에는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테레사 수녀와 봉사자들에게 놀랐지만 나중에 더 놀란 것은 봉사자들이 너무도 행복해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십니까? 힘들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테레사 수녀는 "힘들지요, 참 힘들어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제자가 되어 이를 기쁘게 선포하는 선교는 다른 이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생명은 내어 줌으로써 더 자라고, 고립되고 안주하면 약해집니다. 참으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는 제쳐두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주려는 열정에 불타오릅니다. ...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그만큼 생명을 얻고 또 자랍니다. 선교도 분명 그러합니다." (복음의 기쁨 10항) 그러기에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감탄한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전교 주일, 내가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주님을 보여주고, 주님께 인도하는 행복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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