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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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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1-10 09:17   조회: 1,801회

본문


주님 세례 축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은 성탄 시기가 끝나는 주님 세례 축일이다. 성탄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묵상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와 요셉과 목동들에게 드러나신 성탄에 이어, 공현에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예수께서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묵상했는데, 오늘은 하느님께서 직접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말씀해 주시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하며 성탄 시기를 마무리한다.

이 신비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이루어진다. 요한의 세례는 본래 죄를 씻는 회개 예식이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를 고백하고, 죽음을 상징하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침례). 이로써 죄지은 과거에서 죽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예식이 세례였는데 그 세례를 예수께서 자원하여 받으신다. 아무 죄도 없으신 분께서 어찌하여 죄인들 틈에서 세례를 받으셨을까? 죄 없는 주님께서 죄인의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당신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물에 잠김으로 죄를 없애실 구원 사건을 미리 드러내는 예표다. 주님은 인류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실 것이고, 세례 때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올라오듯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이다. 이를 예표하는 세례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집약한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I, 44-57 참조).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듯 물속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시듯 물에서 나오시자, 그 순간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주님의 세례 장면을 복음은 전한다. 이 장면은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드러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우리의 세례는 죄로 얼룩진 과거에 죽고 은총의 현재에 부활하는 신비였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체(incorporatio)"(교회법 204조 1항) 되는 성사다. 예수님과 합체된 결과, 예수님을 내 아들이라고 선언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우리도 다시 태어났고, 예수님의 세례 때 내렸던 성령께서 나에게도 내려오신 신비다.

세례는 단지 죄를 씻고 공동체에 입문하는 상징적 행위가 아니다. 세례는 하느님께서 태초에 의도하신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우리가 빠져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곤경이라는 심연에 서게 됨으로써 이웃과 연대하게 되고,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심연에 머무르게 된다(L. Williams, Being Christian).

세례로 그리스도와 합체되었다는 말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주셨다는 뜻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특정한 조건을 채울 때만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대학에 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하고, 취업하려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동창회에 가입하려면 같은 학교를 나와야 하고, 회비를 잘 내야 모임에서 받아준다. 이처럼 사람들의 사회는 어떤 조건하에서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선언은 "난 네가 무슨 공을 쌓았기에, 말을 잘 들어서, 공부를 잘해서, 착한 일을 해서 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 자식이기에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네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그저 반갑고 사랑스럽기만 하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체험은 인간이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남는 생존에만 머무르지 않고 참으로 하느님 자녀로 당당히 살 수 있는 전제가 된다(A. Grün).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주님 안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헨리 나웬). 회의와 불안, 열등감으로 고통을 받던 마르틴 루터는 하느님을 체험한 다음 책상 위를 칼로 긁어 "baptizatus sum"(나는 세례를 받았다)라는 말을 새겨 넣고 회의와 불안, 열등감이 생길 때마다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고 한다. 세례는 우리가 온전히 사랑받은 증거이자, 하느님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 사랑이 우리가 살아갈 힘이자, 하느님처럼 되는 길이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셨다. 이제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허덕이며 무슨 조건을 채워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받아주셨다는 믿음으로 넉넉하다.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새로 남이 우리의 세례였다. 거기서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는 길이 열린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몰락하는 육신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합체되어 그리스도가 되는 것,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무상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聖化恩寵, 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神化恩寵, gratia deificans)이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999항).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요약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Deus fit homo ut homo fieret Deus."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하느님은 자신을 낮추어 육(肉, 몸)으로 들어오셨고 그리하여 우리의 몸도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게 되었고,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과 피곤함에 빠져 있을 때, 우리가 무의미나 공허로 가득 찬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 하느님이 주신 사랑을 더럽혀 한없이 두렵고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질 때, 폴 틸리히는 그 순간 이렇게 고백하라고 가르친다: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그대보다 더욱 위대하고 그대가 알지 못하는 이름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지금 그 이름을 묻지 말라. 아마도 이후에 그것을 알게 되니라. 미래에 대해 아무 근심도 하지 마라. 그저 단순히 그대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오늘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렸듯, 하느님의 사랑 안에 인간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신비, 내 모습의 밝음과 어두움이 무조건 다 받아들여진 세례를 내가 받았음을 기억하자. 하느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이르신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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